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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란 역사, 카자르 왕조의 성립부터 쇠퇴까지

by Shawn.M 2025. 6. 21.

 

이란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기를 이룬 카자르 왕조는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약 130년간 이란을 통치하며 정치, 사회, 문화를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특히 중앙집권 강화를 시도하고 외세와의 복잡한 관계를 이어나간 이 시기는 오늘날 이란 정치사와 근대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카자르 왕조의 성립 배경과 정치체제, 외교 전략, 그리고 쇠퇴의 원인까지 폭넓게 살펴보며 이란 역사 속에서의 그 의미를 재조명해보겠습니다.

 

카자르 왕조


카자르 왕조의 성립 배경과 권력구조


카자르 왕조는 1794년 아가 모함마드 칸(Āqā Mohammad Khān)이 자란드(지금의 이란 북부) 지역에서 권력을 잡으며 성립되었습니다. 그는 자란드 부족 출신으로, 사파비 왕조 붕괴 이후 혼란스러운 이란 내 정치질서 속에서 중앙 권력을 재건하고자 했습니다. 카자르의 집권은 단순한 군사력에 기반한 승리가 아니라, 부족 간의 동맹과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결과였습니다.

 

카자르 왕조는 강한 중앙집권을 목표로 했지만, 실질적인 권력 행사는 지역 영주들에게 분산되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지방 자치가 강했고, 왕권은 상징적인 측면이 강했습니다. 왕은 ‘샤’(Shah)로 불리며 종교적 권위와 정치 권력을 동시에 지니고자 했으나, 종교 지도자인 울라마(Ulama)와의 관계는 때로 긴장과 갈등을 동반했습니다. 특히 시아파 이슬람을 국교로 삼은 가운데 종교와 정치의 균형이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정치제도상으로는 왕의 친위세력과 궁정 관료들이 행정 업무를 수행했으며, 왕조 내 계승 다툼과 후계자 문제가 왕권을 불안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권력 구조는 이후 외세의 개입을 허용하는 약점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외세의 개입과 외교 전략

 


19세기 후반부터 카자르 왕조는 러시아 제국과 대영제국이라는 두 제국의 각축장 속에서 외교적 줄타기를 해야 했습니다. 특히 북부는 러시아의 영향권, 남부는 영국의 이익권으로 분할되어 이란의 주권은 점차 약화되었습니다.

 

영국은 인도를 방어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이란을 주목했고, 러시아는 남하 정책의 일환으로 카스피 해 연안을 노렸습니다. 카자르 정부는 양국과의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며 경제적, 정치적으로 의존하게 되었고, 대표적으로 1828년 투르크만차이 조약과 1901년 담배 독점권 계약 등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란 국민들의 반외세 정서가 강해졌으며, 종교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민중 저항이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카자르 왕조는 유럽의 근대화 흐름을 수용하고자 일부 개혁을 시도했지만, 부패한 행정과 재정난으로 인해 실질적인 성과는 크지 않았습니다. 군제 개혁, 교육기관 설립, 신문 창간 등 여러 시도가 있었으나, 내부 저항과 외부 압력으로 인해 대부분 실패하거나 제한적인 효과에 그쳤습니다.


왕조의 쇠퇴와 입헌혁명


카자르 왕조는 20세기 초에 접어들며 급격한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1905년부터 시작된 이란 입헌혁명(Mashruteh Movement)입니다. 국민들은 절대왕정 체제의 부정부패와 외세의 간섭에 반대하며 입헌군주제 도입을 요구했고, 결국 1906년에는 최초의 헌법이 제정되고 의회(Majles)가 설립되었습니다.

 

이 혁명은 당시 중동 지역에서 매우 이례적인 정치적 실험이었고, 아시아권에서 근대 입헌정 체제를 도입한 초기 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개혁의 길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샤는 여러 차례 의회를 해산하거나 헌법을 무력화시키려 했고, 이에 대한 반발로 무장 봉기와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1921년, 군사 지도자 레자 칸(훗날의 레자 샤 팔라비)이 쿠데타를 일으켜 실권을 장악하고 1925년에는 공식적으로 팔라비 왕조를 수립함으로써 카자르 왕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카자르 왕조는 끝났지만, 그들이 남긴 입헌주의 정신과 근대화 시도는 이후 이란 현대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카자르 왕조는 이란 역사 속에서 혼란과 변화의 시대를 대표하는 왕조였습니다. 외세의 간섭과 내부 부패 속에서도 입헌주의와 개혁의 씨앗을 뿌렸다는 점에서 단순한 실패한 왕조가 아닌, 전환기의 주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란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카자르 시대의 경험을 깊이 있게 고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란사의 중요한 전환점들을 지속적으로 탐색하며 중동사의 이해 폭을 넓혀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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